“나의 생각의 한계를 넘어서 믿음으로”
(스 5:1-6)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우리들의 삶에서 내 인생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나에게 삶을 주셨고, 나의 삶을 인도하시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가 나와 함께 하십니다. 나의
영원한 관심은 하나님이심을 명심하고 항상 생각을 훈련해야 됩니다. 구원 받기 전에는 우리의 관심이 세상의 일과 내가 원하는 것에 치우쳤으나
구원 받은 우리는 여기에서 벗어나야 됩니다.
시편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표현하시기를 ‘애굽의 한 포도 나무를 뽑아 옮겨서 가나안
땅에 심으셨다’고 하셨습니다. 나무가
애굽 땅에 심겨져 있을 때에는 애굽의 모든 것을 흡수하고 살았으나 그 나무가 가나안 땅으로 옮겨 심어졌다는 것은 하나님 안에 심어져 하나님의 영향을
공급 받고 산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어린 아이와 같은 신앙 생활에서 벗어나려면 자기 마음에서 벗어날 줄 아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풍랑이 없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우리 주님의 마음, 하나님의
마음 뿐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의
것을 누릴 줄 아는 것이 최고의 복입니다.
그 마음은 모래 위에 세운 집이 아니라 반석 위에 세운 집으로 설명하셨습니다. 주님의 마음 안에는 고민이 없고 불안이 없고 주님의 원하시는 것은 다
하실 수 있는 능력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에 내 마음을 퍼서 주님의 마음에 옮겨 심는 훈련을 부지런히 해야 됩니다.
내 마음이 하나님 안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복입니까?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이 마음을 알 수 없습니다. 성경에 있는 말씀은 비밀이라고 하셨습니다. 인간의 지성과 지식으로는 다 깨달을 수
없는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성령으로 감동된 말씀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야 그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의 연령과 상관 없이 어린 아이일지라도
깨달을 수 있고 어른이 되어도 깨닫지 못할 수 있는 성령의 비밀입니다.
5장에 보면 유다 백성이 바벨론의 칠십 년 포로 생활을 마치고 돌아와서 성전을 건축하다가 대적들의 방해로
성전 건축이 십육 년 동안 중단됩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일찌기 예레미아와 이사야를 통해서 말씀하신대로 칠십 년이 차매 유다 백성들을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풀어 주셔서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시고, 스룹바벨을 총독으로 세우시고 성전을 건축하게 하셨는데 대적들이 그 공사를 못하게 막았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과연 십육 년이라는 이 기간이 허송 세월이었고 불필요한 헛된 시간이었을까? 이것은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계획대로 일이 잘 될 때는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일이 잘 안될 때는 기도하고 기다려봅니다. 그래도 잘 안될 때에는 믿음이 서서히 무너지고 믿음의 약함이 침투합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은혜로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잘 왔는데 대적의 방해로 멈출 수 있습니다. 그 멈추어 있는 시간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대적의 손에 있는 시간이었을까요? 아니면 그 중단된 시간도 여전히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시간이었을까요? 물론, 전지전능하시고 절대자이신 하나님의 손 안에 다 있는 시간들입니다.
어떠한 처지에서도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나의 길입니다. 우리가
일생을 사는 동안에 내 계획대로 잘 되던 잘 안 되던 나의 관심은 여전히 모든 것을 초월하셔서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캄캄한 밤중에라도
욥처럼 좌로 가나 우로 가나 하나님이 전연 안 계신 것 같더라도 조금 더 높이 올라가면 하나님은 초월하셔서 여전히 같이 계시고 여전히 인도하고
계십니다.
요셉의 생애를 사람의 눈으로 볼 때에는 앞이 캄캄하고 반대로 가고 있고 하나님의 말씀과는 전혀 관계
없는 쪽으로 가는 것 같아 보였지만 지나고 보니까 하나님의 섭리하시는 길로 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믿음으로 삽시다. 좁은 내 생각으로는 안 된다고 보이는
것도, 캄캄한 가운데서 내가 엎어지고 코가 깨어져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심을 믿읍시다.
만물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고 하나님의 뜻대로 되는 것이고 그 뜻을 거역할 수 있는 대적은 절대로
없습니다. 하나님은 악한 자의
모든 것도 다 이용하실 수 있는 전능자이십니다.
작은 믿음으로 계산하지 말고 큰 믿음으로 삽시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을 수 있는 큰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네 믿음이 참으로 크다’고 칭찬받은 이방 여인을 기억합시다. 내 눈에는 보이지 않을지라도, 내
좁은 소견으로는 모든 것이 반대로 가는 것 같고 십육년 간 잡혀 허송 세월을 보내는 것 같아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심을 믿읍시다. 원하시는 뜻을 다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그 자식의 소원이어야 합니다.
내 뜻을 이루어달라고 하는 어린 아이와 같은 기도를 떠나서 아버지의 뜻이 나의 생활에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하늘에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내 인생에서도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면 반드시 이루어 주십니다.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자식에게는 큰 복입니다.
특별히 우리에게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우리의 믿음이 갑자기 좁아질 수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이 일어날 때 기도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육신이 어려움을
두려워하고 불평할 때에 목자이신 주님이 같이 계시며 다 들으십니다. 주님이 우리 형편 다 아십니다. 불평하지 말고 주님을 믿고 기도를 해야
내 생각이 탈선하지 않고 믿음을 지킬 수 있습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첫째는 큰 믿음을 가져야 하고, 둘째는
이 어려움을 통해서 주님이 어떤 유익을 주실 것인지를 기도해야 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셨습니다. 범사에는 어려운 일도 포함되어 있고 내
뜻대로 안되는 일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
좁은 생각으로는 어려운 일은 없어야 하고 불필요한 일인 줄로 착각되는데 그 어려움 중에도 감사할 것이 담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어려운 중에서 하나님이 주신 귀한 것을
깨달을 수 있는 보석과 같은 귀한 믿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는 실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내게 부족함이 없으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사람이었는데 감옥에 갇혔습니다. 감옥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일하게 하셨습니다. 에베소서 6장 19-21절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의 사정 곧 내가 무엇을 하는지 너희에게도 알리려 하노니”. 사도 바울은 옥중에서도 복음을 증거할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옥중 서신을 쓰게 됩니다.
빌립보서 1장 13-14절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나타났으니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 고난 중에서도 어떠한 처지에 있든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는 담대한 믿음을 보여주셨습니다.
빌립보서 4장 11-2절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우리가 어려운 중에서도 어떠한 유익이 있는지 깨닫게하여 주시고 이 어려움을 잘 견딜 수 있는 힘을
주시고 하나님께서 이 어려움을 통해서 어떠한 영광스러운 일에 나를 쓰실 것인지 깨닫게 하여 주실 것을 간구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지금도 그 뜻을 이루시고 계시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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