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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스라 2장

      날짜 : 2016. 06. 29  글쓴이 : BOGUM

      조회수 :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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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도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자들”

        (스 2:1-4, 64)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서 그 곳에서 생활했던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구원으로 인해서 다시 본국으로 돌아 왔다, 돌아왔는데 각각 그 지파 별로 자손들이 몇 명이었다라고 하는 것이 역사적으로 쭉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제 1절을 보면 참 중요한 내용을 하나님이 감추어 두셨습니다. 옛적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왕에게 사로잡혀 바벨론으로 갔던 자들 자손 들 중에서 놓임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로 다시 돌아와 각기 각자의 성읍으로 돌아간 자가 누구누구였고 누구누구 자손이고 몇 명이었다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날도 똑 같습니다. 비록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이지만 어디에 포로가 되어서 잡혀 가는가? 사망의 생각, 육신의 생각의 포로로 고통을 당하는 그러한 모습을 여기에서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의 옛날 역사를, 그들의 자손들이 몇 백 명이었는지를 우리가 알 필요가 어디 있습니까? 아버지께서 우리 아버지께서 왜 이렇게 기록하셨는가? 우리는 다 똑같다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면 여러 가지 사망의 생각들을 만납니다. 불안케 하는 생각, 마음을 상하게 하는 생각, 그러한 생각들을 만났을 때 잘 헤쳐서 빠져 나오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에 잡혀 들어가서 포로 생활을 하는 그러한 경향이 더 많습니다. 우리는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몸은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미국 땅에 살면서 생각은 포로가 되어 고생하고 사는 이런 어리석은 자가 어디 있느냐? 우리 아버지의 자식들이 자유인인데 포로가 되어서 종처럼 끌려 다니고 감옥에 들어가 살고 있다, 그것을 우리 아버지가 말씀 하십니다.

         

        사도행전 12장을 읽어 보면 대제사장을 비롯해서 교회를 핍박하는 사람들이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잡아서 처형 시켰습니다. 첫 번째 순교자가 야고보입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너무너무 기뻐해서 헤롯이 베드로를 잡아서 죽이려고 감옥에 넣어두었습니다. 내일이면 베드로를 죽일 것인데, 죽이려고 하는 전날 밤에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서 자고 있는 베드로를 깨웁니다. 발은 묶여 있고 옥 문은 굳게 잠겨 있고 그 문을 지키는 사람도 있는데 천사가 와서 그를 깨우고 일어나 나를 따라 오라고 합니다. 그런데 일어나니까 쇠사슬이 다 풀립니다. 양 쪽에 자기 지키는 사람이 있는데 자기를 잡지를 못하고 가만히 있습니다. 빠져 나옵니다. 쇠문이 굳게 닫쳐 있는데 쇠문이 다 열립니다. 거기 지키는 사람이 있는데도 보지 못하고 그냥 빠져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도행전 11장부터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1, 바벨론에 사로 잡혀 끌려 갔던 자들을 해방 시켜서 나오게 하셨다, 누가? 하나님이.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똑 같습니다. 항상 기뻐해야 됩니다. 내 생각이 지금 자유를 누리고 있는지, 내 생각이 감옥에 갇혀 있는지, 내 생각이 잡혀서 지금 학대를 받고 있는지, 자기 생각을 잘 살펴야 합니다. 우리는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몸은 비록 좋은데 앉아 있을지라도 그 마음은 감옥에 들어가서 고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것입니다.

         

        또 사도행전 5장에 보면 사도들을 잡았습니다. 감옥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서 저들을 다 감옥에서 나오게 했습니다. 밤중에 나오게 하고 그 다음날 아침에 간수가 가 보니까…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23절 “우리가 보니 옥은 든든하게 잠기고 지키는 사람들이 문에 서 있으되 문을 열고 본즉 그 안에는 한 사람도 없더이다”. 참 귀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보니 그 간수가 보니 옥은 든든하게 잠기고 지키는 사람들도 문에 서 있는데 그 안에 그 사도들이 있어야 되는데 문을 열고 보니까 아무도 없더라.

         

        그 사람이 지금 당하고 있는 어려움, 불경기, 질병, 그 사람이 당하고 있는 문제는 그대로 있는데 그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해 보니까 그 사람은 그 안에 있지 않고 나와 있더라, 마땅히 그 사람을 만나면 죽는 소리하고 눈물을 흘리고 심지어는 하나님을 원망해야 되는데 하나님을 감사하고 기뻐하고 있고 소망이 있다, 문제가 풀어진 것 아닙니까? 거기에서 자유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 성령의 구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높임을 받으시고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러한 구원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께서 우리를 늘 자유케 하시는데 우리가 그러한 문제 속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어서 베드로를 빼 내신 것처럼 사도들을 그 생각에서 그 옥에서 빠져 나오게 하신 것처럼 오늘 날 우리 아버지는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시는가?

         

        시편 95 10절 “내가 사십 년 동안 그 세대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이르기를 그들은 마음이 미혹된 백성이라 내 길을 알지 못한다 하였도다” 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라는 문제 속에서 하나님은 길을 인도하였는데 저들이 그 길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11절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도다”저들은 내가 인도하는 길을 알지 못했으므로 안식에 못 들어 왔다!

         

        오늘도 이와 똑 같습니다. 어려운 문제, 힘든 문제, 두렵게 하는 문제가 왜 없겠습니까? 기분 상하는 일이 왜 안 나타나겠습니까? 그러나 나타날 때 내가 거기에 사로잡혀 끌려가거나 그 옥에 갇히지 않고 나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나를 인도하신다, 그런데 인도하는 길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길이다”, “진리가 너희에게 임하면 참으로 자유하리라”. 내가 자유다. 내가 주는 생각을 따라오는 것이 내가 너를 인도하는 길이다. 고민과 불안과 기분 상한 일에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생각이 바로 하나님이 칠흑과 같은 어둠 속에서 굳게 닫혀 있는 감옥에서 나를 자유케 하시는 자유의 길입니다.

         

        시험에 빠져서 죽는 소리, 엉뚱한 불평 소리 하지 말고 거기에서 빠져 나오는 길이 무엇인가? 예수님이 나의 길이요 자유이니까 주님이 주시는 생각을 따라 나오면 쇠사슬이 자연적으로 풀리고 옥문은 자연적으로 열리고 간수가 굳건히 두 사람이 있지만 잡지 못합니다. 실재입니다.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평생에 너와 함께 있겠다, 나는 부족함이 없는 목자”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우리 주님의 인도하시는 길을 알지 못하면 나에게 주시는 안식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인도하십니다. “내가 광야 사십 년 동안에 나는 네게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고 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에 부족함이 없으십니다.

         

        요한복음 10 27절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음성을 듣고 그것을 따라 간다. 우리 주님은 오늘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시느냐? 생명의 생각을 주시면서 따라 오라 하십니다. 그것을 따라가야 자유해지고, 화평케 되고, 고민과 불안과 어두움이 나를 사로잡지 못하고 자유케 죄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구원이 베드로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나타납니다.

         

        에스라서 2장에 보면 수백 명이 나왔다고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자상하게 기록해 놓았는가? 한 두 사람만 포로가 되었다가 빠져 나온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인도로 포로에서 나왔다, 너희들도 똑같이 나의 인도함을 받아서 자유함을 받아라, 그 말씀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나의 생애에 함께 계시는 주님의 구원이십니다.

         

        마음에 일어나는 생각을 잘 구분해야 됩니다. 육신의 생각 우리가 고생하는 생각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 몇 가지가 내 일생을 사는데 나를 괴롭히는 대적입니다. 홍해도 갈라지는 것을 믿는다면 역사만 믿지 말고 주님의 생각을 따라가면 내 생애 홍해에도 길이 생기고 여리고 성도 무너지면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성경 지식만 가지고 살아서 무엇합니까? 그 분이 오늘 나의 하나님이신데 성경의 지식이 아니라 바로 성경에 있는 그 분이 오늘 나의 구원자이십니다. 우리는 그 분의 자식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이 아니고서는 구원 받을 길이 없습니다.

         

        주님이 생명의 생각으로 인도하시는 것이 전능자가 나를 인도하시는 인도입니다. 그래서 항상 육신의 생각 사망의 생각 따라 가지 말라, 따라가면 어디로? 그냥 낭떠러지로 가는 것입니다. 죽는 소리 해서 건져 놓으면 또 따라 가서 퐁당 빠지고 빠지고 이것을 사십 년 동안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저들이 내가 인도하는 길을 알지 못하니 내가 저들에게 주는 나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한다”하셨습니다.

         

        안식에 들어와야 찬양이 있고, 아버지를 기뻐하고, 구원의 기쁨을 누릴 수가 있는데, 안식을 누리지 못하니 진짜 기쁨을 내가 누리지를 못한다는 것입니다. 나에게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하는 때가 올 때 그 하루는 전 재산을 팔아서라도 살 수 없는 시간입니다. 그렇게 소중한 시간을 시험에 빠져서 투덜거리면서 사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것입니까? 근심이 왜 없습니까? 그러나 베드로와 사도들을 구하여 주셨던 하나님, 그 분이 오늘날 나의 삶에도 구원해 주십니다.

         

        요한복음 8 32절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진리는 예수그리스도, 예수그리스도 하나님만이 진리이시고 하나님만이 자유입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것에도 구속되지 않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에게는 어두움이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 하나님이 주시는 생각을 품는 것이 자유를 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8 36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예수 그리스도만이 나를 자유케 하는데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의 생각을 품고 따라서 가면 참으로 자유하리라!

         

        문제 해결되는 것보다 문제의 포로에서 빠져 나오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포로에서 빠져 나와야 그 다음에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주님은 ‘내가 너의 선한 목자라 나는 너를 지키고 너를 인도하는 데 나는 졸지도 않는다’. 그런데 인도하시는 음성을 못 듣고 그냥 감옥에 들어가서 고민과 불안과 근심 가운데 푹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 생각이. 그 생각은 내 영혼의 활동입니다.

         

        고린도후서 317절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요한복음14 6절 “내가 곧 길이요” 나를 따라오너라, 그것이 길이다, 근심에서 빠져 나오는 것이다. 주님 생각만 따라가면 스트레스 절대로 없습니다. 스트레스는 다 육신의 그림자요 사망의 그림자입니다. 약 먹는다고, 술 마시고 소리 꽥꽥 지른다고 풀어지는 것 아닙니다. 그것은 다 속임수 입니다.

         

        자유는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참으로 자유하리라! 나의 생각이 주님의 생각을 품고 가면 자유해집니다. 아버지가 주신 구원을 오늘도 내일도 누리면서 천국 가는 그 날까지 내가 너를 인도하리라고 말씀하신 대로 생명의 생각을 따라서 가면, 때를 따라 나타나시는 하나님의 영광 속에서 인생을 살아가는 영광을 우리들도 풍성하게 누리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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