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사에 하나님의 은혜를 찾고 거두라"
(삿 2:1-4)
사람을 통하여 나타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데 사람을 통하여 베푸십니다. 2절 “은혜를입으면그를따라서이삭을줍겠나이다”. 룻이라고 하는 이 여인은 모압 여인 이방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방인들을 특별히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해서 아주 무시하는, 그러한 나라에서 이방 여인 룻이 지금 삽니다. 그런데 이 룻은 남편도, 자식도 없고 나이 많은 시어머님을 모시고 살아야 하는 사람입니다. 인생이 너무 힘들고 불행한 위치인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의지할 것이라고는 전혀 없는 그 여인에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볼 줄 알고, 그런 은혜가 나에게도 나타나시는 것을 볼 줄 알고, 그런 은혜가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은혜를 볼 줄 아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이 이방 여인 룻에게 하나님의 어떤 은혜가 임하셨습니까? 이삭을 주우러 나갑니다. 은혜를 거두러 간다, 참 복된 생각이지요? 알곡을 거두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쭉정이를 거두는 사람이 있고, 장미꽃을 거두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장미 가시를 거두는 사람이 있고, 인생을 사는데 있어서 무엇을 바라보도록 노력을 할 것이며 무엇을 거두도록 노력을 할 것인가? 이 노력은 매우 중요합니다.
생각을 잘 다스릴 줄 알아야 됩니다. 물은 아래로 흘러가는 법칙이 있는 것처럼, 생각이라고 하는 것은 사망 쪽으로 나를 불행케 하는 쪽으로 가는 법칙이 있습니다. 정신을 차려서 이 생각이 그 쪽으로 가지 못하도록 내가 다스려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사람답게 되기 위해서 태어나서부터 일평생 배우는 것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배우지 아니하면 아주 낮은 수준에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도 구원을 받은 상태로 그대로 있으면 그저 안 믿는 사람과 거의 비슷한 수준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배워야 하나님의 자녀답게 성장하게 되고, 성장할수록 하나님 아버지가 베풀어 주시는 은혜로 살아갈 수 있고,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는 그러한 복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이방 여인 룻이 은혜를 거두러 가는 것입니다. 참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어떻게 나타나는가 보십시오. 2절 “이삭을줍겠나이다”, 3절 “룻이가서베는자를따라밭에서이삭을줍는데우연히엘리멕렉의친족보아스에게속한밭에이르렀더라”이삭입니다. 남들이 농사하는데 가서 땅에 떨어져 있는 것을 주우러 갑니다.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다 했습니다.
9절 “그들이베는밭을보고그들을따르라내가그소년들에게명령하여너를건들지말라하였느니라목이마르거든그릇에가서소년들이길어온것을마실지니라”이삭주우러가다가그다음에? 물까지도 마실 수 있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밭의 주인이 이삭 줍는 그 여인이 목 마르면 마실 물도 주고 그 여인을 방해하지 말고 건드리지 말라고 소년들에게 주의를 줍니다. 은혜이지요?
14절 “식사할때에보아스가룻에게이르되이리로와서떡을먹으며초에찍으라하므로”떡먹는은혜와이제떡을초에찍어먹는은혜가있습니다. “룻이곡식베는자곁에앉으니그가볶은곡식을주매룻이배불리먹고남았더라”은혜가자꾸자꾸많아지지요? 단지 이 여인은 그저 이삭을 줍는 것으로 만족하고 쫓아내지 않는 것만 해도 너무 감사한 입장입니다. 그런데 이삭을 줍는 자기 자신에게 ‘저 여인이 목 마르거든 마실 물을 주라’고 주인이 그렇게 말해 주고 음식을 먹을 때에 떡 조각을 줍니다. 그리고 배불리 먹었습니다.
그 다음 16절 “또그를위하여곡식다발에서조금씩뽑아버려서그에게줍게하고꾸짖지말라하니라”, 17절 “룻이밭에서저녁까지줍고그주운것을떠니보리가한에바쯤되는지라”그주인은그여인이누구인가를잘압니다. 이방 여인으로서 와서 자기의 시어머니를 잘 모신다는 소문을 들은 사람입니다. ‘이삭을 좀 많이 떨어뜨려 주라, 그래서 좀 많이 주워가도록 해 주라’. 아무 것도 없는 룻에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그렇지요? 23절 “이에룻이보아스의소녀들에게가까이있어서보리추수와밀추수를마치기까지이삭을주우며”했습니다.
이제 내일도 이 밭에 와서 또 이삭을 주울 수 있도록 보장 받았다는 것, 밀 추수 끝날 때까지 눈치 보지 않고 마음 놓고 안전한 그 곳에 가서 또 푸짐하게 거둘 수 있는 곳을 보장 받았다는 것, 참 큰 은혜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사람을 통하여 베풀어 주신 은혜입니다.
우리는 이런 은혜 속에 파묻혀 삽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은혜로 생각하지 아니하고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더 나아가서 부족한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저 이웃이 나를 알아주는 것만 해도 고맙고, 웃어주는 것도 고맙고…, 내 옆에 이웃이 있다는 것도 전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은혜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배부른 사람에게 이삭은 아무런 은혜로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룻에게는 그 이삭 하나 하나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마실 물 한 컵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우리가 낯선 곳에서 누구의 도움 받았을 때 얼마나 감사했나? 아무 것도 모르는 우리들에게 누군가 도움을 주었을 때 너무 감사합니다. 그런데 왜 배가 부를 때는 그것이 은혜가 안 되는지? 생각이 잘못되어서 그렇습니다. 은혜는 여전히 풍성한 은혜인데! 룻이 받는 은혜보다 우리는 더 엄청난 은혜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내 인생은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 차 있습니다. 조금 있으면 해가 분명히 떠 오를 것입니다. 하나님 은혜입니다. 모든 것을 다 갖추었다 하더라도 오늘 태양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오늘 아침에 내가 별 어려움 없이 일어날 수 있었다,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모든 계획이 수립되어 있다 할지라도 일어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숨 쉬는 것에는 전혀 신경도 안 쓰고 앉아 있는 것 보면 참 기적이라. 엄청난 기적이요 하나님의 은혜인데, 색을 보고도 색깔을 구분하지 못하는 색맹처럼 하나님의 은혜 속에 있으면서 은혜인 줄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생각의 색맹.
행복은 어디에서 올까? 은혜를 은혜로 알 때 그것이 행복으로 바뀌어집니다. 행복 찾느라고 이리저리 우왕좌왕할 것이 아니라 이미 내 주변에 뿌려지고 흩어져 있는 이삭들이 얼마나 많이 있을까를 생각해 보십시오. 욕심 채우는 것이 인생이 아니라 은혜를 알고 감사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생각에 병이 들어서 일평생 욕심 채우느라고 우왕좌왕 하는 그 모습은 너무나 초라하다는 것입니다.
이 룻이 배불리 먹고 남은 것을 집으로 싸 갑니다. 그 볶은 곡식 조금 들고 가는 그 룻의 마음, 그 나이 많은 어머니를 위해서 가지고 갈 때 그 마음이 얼마나 행복했을까? 우리는 추울 때 입는 옷이 따로 있고 더울 때 입는 옷이 따로 있습니다. 얼마나 행복합니까? 우리는 정말 하나님의 은혜가 이렇게 많이 뿌려져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거두어들이는 그 밭에서 이삭을 줍는 룻의 시선은 어디에 가 있을까? 이삭만 알곡만 주우려고 신경 쓰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 눈을 떠서 감사할 것에 신경 쓰고 산다면 얼마나 많이 거둘 수 있겠습니까?
없다고 말하지 말고 부족하다고 말하지 말고 이삭을 줍는다, 그래서 이 룻에게 그 은혜가 자꾸 더해지고 줍는 양이 자꾸 많아집니다. ‘저 사람은 저렇게 많이 있는데 나는 왜 없을까?’ 그 생각 자체가 나를 불행케 하는 무서운 적입니다. 저 사람에게는 전혀 계산도 되지 아니하는 그 이삭이 나에게는 알곡으로 모아진다는 사람은 너무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삭까지도 거둘 줄 아는 실력, 다른 사람은 계산할 가치도 없다고 하는 그것이 나에게는 알곡으로 거두어진다는 사람은 너무너무 훌륭한 사람입니다. 이삭을 알곡으로 거두어들이는 그 행복한 마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삭은 전혀 신경 쓰지 아니하고 앞에 황금 덩어리 떨어지는 것만 바라보고 산다면, 자기 자신을 불행케 하는 인생이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주의 자녀들에게는 겉으로 보면 광야와 같을지라도 깨어서 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구석구석에 흩어져 있다는 것. 특별히 사람을 통하여서 은혜가 나타날 때 꼭 거두어들일 줄 아는 습관은 참 좋습니다. 그 은혜는 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 줍니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인생을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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