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죽이고자 하는 자를 사랑한 삼손"
(삿 16:15-21)
16장은 삼손의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능력을 빼앗고, 그 능력이 그에게서 떠나게 하고, 그리고 삼손을 잡아서 맷돌을 돌리게 하는 사건입니다.
영적으로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것을 사랑하고 있는 사람,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입니까?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여인을 삼손은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의 많은 핍박을 받고 있을 때 이 삼손이 블레셋 여인을 사랑했습니다. 그 여인을 사랑할 때마다 사고가 일어나고, 자기를 괴롭히려고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것을 알면서도 또 블레셋의 한 여인을 사랑하고, 또 한 여인을 사랑하고, 자기의 대적을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 마음이 그리로 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들릴라, 그녀의 무릎에서 잠자게 하고 술에 수면제를 탔는지 머리를 자를 때까지 깨어나지 못하게 해서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여인. 그 여인의 무릎을 베고 잠자고 있는 이 어리석은 사람 삼손. 자기의 대적이 누구인지를 알면서도 대적을 사랑하고, 그 대적은 자기를 불행케 하려고 하고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그의 머리를 다 잘라버렸더니 힘이 하나도 없어졌더라. 하나님이 주신 능력이 다 떠나 버린 것입니다. 블레셋 군인들이 와서 그 삼손을 잡아 도망가지 못하도록, 힘 쓰지 못하도록 그 자리에서 눈을 빼고 끌고 가 버렸습니다. 어디로 데리고 갔느냐? 그 다음 읽어 보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재주를 부리게 하고 그들이 그것을 보고 즐거워했다, 대적에게 사로 잡혀서 하나님이 주신 능력 다 빼앗기고 눈을 빼앗겨서 앞도 못 보는 처량한 사람이 될 뿐 아니라 그 원수들이 자기를 보고 즐거워하는 재주를 부리고 있었다, 삼손이 그렇게 생활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택함 받은 사람인데 말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께로부터 택함 받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영적으로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입니다. 우리는 존재 자체가 신령한 자요 거룩한 자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로부터 주시는 은혜와 능력을 받아야 되고 빼앗기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의 대적이 누구냐? 사망의 생각을 충동질하는 내 안에 있는 육신(죄)입니다. 그 죄가 기회만 있으면 나타나서 나를 괴롭힙니다. 그리고 은혜를 자꾸 떨어뜨리게 헤서 힘이 없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 다음에는 자기가 시키는 대로, 피리 부는 대로 그냥 춤을 추도록 우리를 그렇게 만듭니다.
우리는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기뻐할 수 있는 특권을 받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생명을 받았고, 죽은 것을 먹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영광의 것, 살아있는 생명의 것을 먹고 사는 사람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사망의 생각을 먹고 삽니다. 먹는 양식이 다릅니다. 우리는 족보가 다릅니다. 마태복음 1장에 보면 족보가 나옵니다. 우리 제일 위에 누가 있습니까? 하나님 아버지! 세상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은 아버지가 아닙니다. 창조주요 신이지만 우리 하나님은 내 아버지입니다. 족보를 보면 하나님 아버지 밑에 우리가 쫙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사랑받는 자요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고 살아가는 사람인데 이 대적이 하나님의 은혜를 못 받도록 자꾸 유혹합니다. 그럴 때 우리가 그것을 사랑하고 그리로 마음이 빠지면 은혜를 다 빼앗겨 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구원은 받고 하나님 자식으로 거듭났으니까 하나님을 떠나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누릴 수 있는 그 능력은 못 누리고 세상 사람들과 똑 같이 걱정으로 살고 그냥 마음 상하고 살고 섭섭이 하고 친구로 살고 매일 죽겠다고 하는 쇠사슬에 매여서 매일 똑 같은 걱정을 메고 그냥 맷돌 돌리듯이 돌리고 사는 것입니다. 삼손이 그 연자 맷돌에 매여서 그냥 밥 먹고 하는 일이 그것 돌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걱정, 염려, 사망의 생각들을 잡고 도는 것입니다. 약하니까.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강건해질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로부터 능력을 받을까? 삼손의 힘은 그 자신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힘이었듯이 우리는 내 아버지로부터 믿음의 힘을 내 마음에 받아야 됩니다. 그 받는 방법은 아주 쉽습니다. 하나님은 빛이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을 성경을 보면 참 빛이 오셨다 했습니다. 요한 복음 1장 9절 “참빛이라”. 자연에 빛이 있어야 꽃도 피고 생명이 다 삽니다. 빛이 없으면 우리는 다 죽습니다. 영적으로 우리의 생명의 빛, 우리의 심령을 살려주는 빛은 하나님이십니다. 그 빛을 받으면 살아납니다.
그런데 빛을 막아버리고 그늘지게 하면 다 시들어 버립니다.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하고 마음이 멀어지면 그늘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늘로 들어가는데 어느 생명체가 왕성하겠습니까? 우리는 피조물, 스스로는 살 수 없고 항상 도움을 받아야 하는 피조물입니다. 밥을 먹고 숨을 쉬어주어야 우리가 살 수 있듯이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아야 우리가 살 수 있는 피조물입니다.
그런데 마귀가 하나님하고 멀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걱정이 많을수록, 몸과 마음이 힘들수록 어떻게? 빛을 가까이! 우리 방안에 키우는 화초도 몇 일만에 한 번씩 바람도 쐬고 햇빛 받으라고 바깥에 내 놓습니다. 그러면 좋아서 윤기나게 잘 살아납니다. 우리 사람도 하나님이 생명의 빛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내 심령이 건강해지고 힘을 받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하나님의 자녀로 능력을 받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생명의 빛입니다. 생명의 빛이라!
요한복음 8장 12절 “나는세상의빛이니”빛은빛인데무슨빛? 그 다음에 보면 “생명의빛이라”하나님이생명의빛입니다. 성경에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는 그 하나님이 나에게 생명의 빛입니다. 그래서 시편 74편 28절 “하나님께가까이함이내게복이라”. 시편 27편 1절 “여호와는나의빛이라”. 이것은 시적인 표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참 빛입니다. 그래서 그 빛을 받으면 삽니다.
사람이 시험(육신의 생각에 빠지는 것)에 들면 하나님 가까이 하기 싫고, 기도하기 싫고, 찬송하기 싫고, 교회 열심히 가기 싫고, 점점 멀어집니다. 왜? 그것은 하나님에게 가까이 가지 못하게 힘을 빼는 대적의 유혹입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빛입니다. 이 빛을 받으면 내 몸도 마음(영혼)도 건강해집니다. 시편 27편 1절 “여호와는나의빛이요나의구원이시니”빛을가까이하니까구원이온다는것입니다. 그 다음 “여호와는내생명의능력이시니”, 하나님을 가까이 하니까 능력이 되더라! ‘하나님은 빛이라 하더라’가 아니라 “여호와는나의빛이라,구원이라, 생명의 능력이라”. 맞습니다. 그래서 우리 아버지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하는 함정을 항상 조심하라. 그런데 이 삼손은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여인을 사랑하고 그 여인의 무릎에 잠자고 있었습니다.
이사야서 40장 31절 “오직여호와를앙망하는자는새힘을얻으리니”맞습니다. 빛을 가까이 하면 힘을 받아 마음의 걱정 근심 무겁고 어두운 생각들이 기운을 못 차립니다. 어두움은 그 빛의 권세 앞에 꼼짝 못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하나님하고 멀어지면 그늘진 생각이 내 마음에 자리를 잡아서 나를 괴롭힙니다. 하나님 가까이 하는 것이 만복입니다.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고 마음이 맑아지면 얼굴이 맑아집니다. 마음이 밝으면 거기에서 나오는 말도 밝아지고 마음이 어두우면 거기에서 나오는 말도 어두운 말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참 빛입니다. 빛과 같은 분이 아니고 참 빛입니다. 그 생명의 빛은 믿음으로 받는 자에게 임하십니다. 하나님의 것은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자에게는 역사가 안 일어나지만 알고 믿을 때에 나에게 찾아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하루에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하여서 창문을 열어 놓고 기도한 것처럼, 빛을 향하여 믿음의 마음을 확 열어놓고 ‘하나님이여 빛이 나에게 임하셔서 나를 살려 주시니 감사합니다’. 창문만 열면 빛은 자동적으로 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 시간에도 생명의 빛이 나에게 충만히 오고 있습니다. 나의 심령까지도 그 생명의 빛으로 살려주는 일을 하십니다. 오늘도 피곤한 일을 만날지라도 그것을 감당할 수 있도록 강건함을 주는 이 은혜를 믿음으로 받고 누리고 삽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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