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덕 목사의 새벽만나]
본문: 여호수아 20:1-9
제목: 어떻게 분노를 다스릴 것인가?
사람의 분노를 다스리는데 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는 진영 여섯 곳에 도피성을 만들게 하셨습니다. 그 거리는 하루길 정도 되는 곳에 두어서, 예를 들어 산에서 도끼로 나무를 자르다가 그 도끼날이 빠지므로 인해서 같이 일하는 사람이 죽었을 경우, 그러니까 고의로 죽인 것이 아니라 어떤 일로 인해서 그러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 죽은 사람의 가족들이 분해서 복수하고자 하는 일이 일어난다, 그럴 때에 도피성으로 최대한으로 노력해서 들어가라, 거기에서 합당한 재판을 받아라, 만약에 고의적으로 죽였다 하면 피해 보복자에게 내어주어서 죽임을 당하게 하고 그냥 어떠한 실수로 인하여서 일어났을 경우에는 그 사람이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도록 그 성읍에서 살도록 보호해 주라 그런 내용입니다.
사람이 어떤 일로 인하여서 내 가족이 죽임을 당했다고 했을 경우에 우리 사람 마음 안에는 복수하고자 하는 분노가 그냥 일어납니다. 그 분노가 일어나면 사람이 올바르게 판단하지 못하고 크게 실수하게 되고 죄를 범하게 된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아시고 거기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시는 것입니다. 순간적인 어떤 충동으로 인하여서 분노가 일어날 때 그 분노를 다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분노를 화(火)라고 하지요? 성경에도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명기 32장 22절 “내 분노의 불이 일어나서 스올의 깊은 곳까지 불사르며 땅과 소산을 삼키며 산들의 터도 불타게 하는도다.”내 분노의 불이라! 그 불은 모든 것을 다 태워버린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생애를 그냥 태워버리는 엄청난 불행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이 분노라고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잠언 22장 24절“노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라.”노를 품는 자를 가까이 하지 말라고 경고하십니다. 왜냐하면 화를 가지고 있는 사람의 말을 듣다보면 그 분노가 나에게 전염이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내 형제가, 내 사랑하는 자식이 억울한 일을 당했다는 소리를 들으면 내 마음에 불이 확 붙어버립니다. 그 분을 품고 있는 자, 그 마음에 불을 품고 있는 자를 조심하라. 왜? 네 속에도 불이 붙기 때문이다.
욥기 36장 18절 “그대는 분노하지 않도록 조심하며 많은 뇌물이 그대를 그릇된 길로 가게 할까 조심하라.”그 분노를 조심하라! 분노는 뇌물을 받은 것과 같다 했습니다. 뇌물을 받으면 사람이 바르게 판단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내 속에서 분노가 일어날 때에는 그 분노를 참으라! 잠언 12장 16절 “미련한 자는 당장 분노를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분노는 참아야 된다! 왜? 불이 붙으면 그 인생이 불행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참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시편 37편 8절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분을 참으라, 그 다음에 훈련이 되면 분을 버려라 했습니다. 그러면 화를 참는 방법, 화를 버리고 화를 분리시키는 방법이 무엇인가? 내 마음에 불이 붙었을 때 그 불을 끄는 비결은, 휘발유를 붓지 말고 물을 부으면 꺼지듯이, 화가 났을 때 주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거룩한 것을 생각해야 여기에 있는 불이 꺼집니다. 주님 생각하지 아니하고 참으면 속에서 불이 그냥 탑니다. 그러면 속병에 걸립니다.
그 분노라고 하는 것은 무서운 독입니다. 심령과 몸을 상하게 만들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태워 버립니다. 반드시 이 분노를 다스리는 훈련을 해야 됩니다. 참아라! 분노는 토해내는 것 아닙니다. 토해내면 유익한 것 절대로 없습니다.
세상은 토하라고 하지만 속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미국의 교육이 처음에는 성경을 바탕으로 해서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성경 바탕이 아닙니다. 그래서 속으면 안 됩니다. 사람을 창조하신 아버지의 말씀을 통해서 배워야 합니다. 그 분노를 참으라, 토해내지 말라, 그 다음에 내 버리라!
어떻게 참을 수 있느냐? 어떻게 버릴 수 있느냐? 분노와 정반대는 거룩입니다. 따진다고 분노가 죽는 것 아닙니다. 불이 더 붙습니다. 거룩함을 생각해야 합니다. 분노가 났을 때 동조해 주면 아주 기분 좋지만 그것이 나를 더 불태워 버립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 자신의 생애의 수레바퀴에 불이 붙으면 그 다음에는 다 무너집니다. 분노가 그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사람과의 관계, 나 자신의 영육간의 건강, 나의 삶의 형통함을 분노가 파괴합니다.
분노는 참으라! 분노는 버려라! 분노의 불이라 다 태웁니다. 들도 태우고 산도 태우고 다 태워버린다, 다 태우고 나면 남는 것은 잿더미 밖에 없습니다. 참고 버리는 비결은 거룩함을 생각하라! 이것이 평소에 훈련이 되어야 분노가 났을 때 거룩함 쪽으로 도피하여 달려갈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거룩한 분, 주님을 생각해야 됩니다. 문제를 생각하면, 따지면 불이 더 붙습니다. 몸이 벌레에 물려서 벌겋게 될 때에 자꾸 긁어주면 시원하지만 독성으로 더 붓습니다. 참아야 됩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 과학의 발달로 인해서 모든 것이 수월하고 편하다 보니까 참는 훈련이 참 잘 안 되어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빨리 빨리에 훈련되어 있어서 좀 참으려고 하면 얼마나 힘이 드는지 모릅니다.
인간이 만든 것은 겉으로 보면 참 편한데 인생을 파괴시키는 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자라고 있는 아이들이 사람들과의 관계는 없고 전부 다 기계를 가지고 놀다가 버립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왕입니다.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살면 참아야 할 일도, 주어야 할 일도 있는데 기계하고 노니까 참을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냥 하다가 내버리고…. 그렇게 자라다가 나중에 자기 인생은 어떻게 살겠습니까?
그래서 우리 부모들이 자식을 키울 때 애가 원하는 대로만 해 주지 마십시오. 하고 싶지 아니한 것도 부모님의 말이니까 순종할 줄 알도록, 억지로 자기를 다스리고 그 일을 하도록, 자기가 꼭 하고자 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도 훈련시켜야 됩니다. 그래서 나중에 이 아이가 자기를 컨트롤 할 수 있는 자제력이 생겨야 그 삶이 형통해집니다. 오늘날 참을성이 없어서 일어나는 사고가 얼마나 많은지! 무서운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 정말 잘 키워야 됩니다. 사랑한다고 해서 그가 원하는 대로? 아주 위험합니다. 세상은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무엇을 훈련해야 되는가? 분노가 났을 때 다스리라. 참으라.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오래 견디며’사랑이라는 단어에 참는 것을 제일 많이 강조하셨습니다.
어떻게 다스릴까? 거룩한 것을 생각하라! 세상 사람들은 거룩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 분노를 드러내서 사고를 내던지, 그냥 속으로 참아서 속병이 생기든지, 이래도 저래도 불행입니다. 거룩함을 바라보면 그 분노가 죽어 버립니다. 그것이 답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이 속병이 생기면 되겠습니까? 어두움이 있을 때 빛을 보면 어두움이 도망가듯이 거룩함을 바라보고 있어야 분노가 죽습니다. 이것을 다스릴 수 있는 분은 거룩하신 우리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이 습관을 가집시다.
우리가 거룩한 우리 주님을 모시고 있다는 것, 우리 거룩한 하나님을 바라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은혜인지 모릅니다. 우리 마음에 불쑥 불쑥 일어나는 분노의 종이 되지 말고 분노를 다스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권세를 받았는데 분노가 일어날 때 거룩함을 생각함으로 분노를 다스리면서, 우리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채워진 은혜를 지켜가면서, 은혜 위에 은혜를 더 누리면서, 오늘도 내일도 복되게 삽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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