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덕 목사의 새벽만나]
본문: 여호수아 11:16-20
제목: 나와 육신을 구별하여 살아라
전쟁에 대한 말씀으로 하나님에 의해서 여호수아가 전쟁을 크게 이겼다는 내용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 사람들을 다 죽이라고 했는가? 죄가 그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20절 “그들의 마음이 완악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했다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했다는 것입니다. 저들의 마음이 완악하다는 것은 죄의 나타남입니다. 이 죄는 죄성, 육신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육신이 신앙 생활하지 못하게 하는 우리의 대적들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오려고 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을 장악하고 있었던 바로의 마음입니다. 출애굽기 11장 10절 “모세와 아론이 이 모든 기적을 바로 앞에서 행하였으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자손을 그 나라에서 보내지 아니하였더라.” 바로의 완악한 죄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나가서 섬기는 것을 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14장 4절 보시면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해방 받아 나왔을 때 이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나가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잡으러 옵니다. 4절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 바로가 그들의 뒤를 따르리니 내가 그와 그의 온 군대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어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게 하리라.”이 죄, 이 육신이라고 하는 것은 주의 백성들이 하나님에게로 나가지 못하도록 앞에서 막기도 하고, 나가고 있는 저들을 뒤에서 잡아 당겨서 가지 못하게 하는 이러한 방해를 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시편 81편 12절 “내가 그의 마음을 완악한 대로 버려 두어 그의 임의대로 행하게 하였도다.” 인간의 마음을 하나님이 다스리시지 아니하고 그대로 두면 그렇게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은혜 중에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불평하고 원망하는 일을 이 육신이 합니다. 주의 백성들이 은혜 중에서 살면서도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95편 8절 “너희는 므리바에서와 같이 또 광야의 맛사에서 지냈던 날과 같이 너희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지어다.”이것은 출애굽기 10장에서 저들이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아서 광야 길을 가는데 마실 물이 없었을 때 하나님께 대항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우리가 모세를 죽이고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합니다. 하나님이 저들의 그 소리를 듣고 진노하셨습니다. 완악한 이 죄성이 저들의 마음을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에 내 안에 일어나는 이 육신이라고 하는 죄의 것을 잘 다스려 나가야 됩니다. 로마서 8장 7-8절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라, 결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은혜생활 잘하다가도 어떤 문제가 있으면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불평이 육신에서 일어나는데 그것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내 속에 있는 육신이 그러한 소리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런 소리가 일어날 때에 내가 거기에 동참할 것인가 아니면 거절할 것인가 그 구별을 우리가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 안에 육신이 일어나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면 신앙생활 하는데 아주 큰 갈등을 가지게 됩니다. 어떤 어려움을 당했을 때 내 안에서 하나님에 대한 의심이 생기고 하나님께 대항하고자 하는 그런 마음이 일어났을 때 성도들은 ‘아니, 내가 믿음이 있는 줄 알았는데, 내가 은혜 중에 있었고 내가 신앙생활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내 안에서 이런 생각을 하는가?’하고 매우 놀랍니다. 그것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내 안에 육신이라는 것이 나타나서 그렇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일어날 때에 거기에 내가 동참을 하면 죄를 범하는 것이지만, 일어나지만 그것을 거절할 때에는 죄가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로마서 7장 17-18절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구원받은 성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 죄가 “육신이라”, 그러니까 내 안에 내가 아닌 죄(육신)가 일어나서 하나님을 원망하게 하고 절망케 하고 다양한 생각들을 일으켜 주는데 그것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육신이 내 속에서 한다는 것입니다.
육신은 내가 아무리 은혜 받고 충만할지라도 절대로 변하지 아니하고 굴복하지 않습니다. 비록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잘하더라도 이 육신은 어떤 기회만 있으면 원망케 하고 불평케 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못하게 잡아당기고 세상 적으로 가게하고 그냥 파괴 쪽으로 분쟁 쪽으로 나타나도록 충동질합니다. 그럴 때 내가 그것을 거절하고 따라 가지 않아야 됩니다. 내가 믿는 것은 주님, 내가 따라가는 것도 주님이어야 됩니다. 육신은 하나님과 원수요, 육신을 가까이 하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육신은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 아무리 잘 했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아니하고 서서히 멀어지면 나에게 일어나는 육신의 소리에 그냥 빠져 버리고 육신에 사로 잡혀서 육신을 표현하는 도구가 되는 사람으로 전락되어 버립니다. 한 때 은혜생활 충만했던 사람들이 나중에 보면 완전히 엉뚱한 사람이 될 수 있는 이유가 이 육신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하여서 은혜가 충만해야 육신을 이기면서 믿음 생활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확신이 떨어지면 내 안에 있는 육신의 거짓말에 그저 솔깃하고 빠져버립니다. 육신을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불신자가 가지고 있는 것과 똑 같은 것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이 여호수아서에 하나님께서 왜 전쟁을 많이 기록하게 하셨느냐? 저들이 완악하여서 그렇다, 그 죄와의 싸움을 확대시켜서 우리에게 설명해 주시는 것입니다. 누가 내 대적인지? 누가 내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방해하는지? 육신입니다.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통하여서 나타납니다.
고린도전서 3장 1절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은혜가 충만한 자, 주님과 믿음의 관계가 좋은 자)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성도인데 육신하고 산다는 말입니다. 그것을 육신에 속한 자요 영적으로는 구원은 받았는데 어린아이라!
3절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 아직도 너희가 육신에 속하여서 분쟁하고 시기하고 싸우고 그렇게 하느냐? 분쟁과 시기와 질투와 미움이 일어나는 것은 그 육신 때문이다, 사람이 실수는 할 수 있지만 ‘아직도’ 거기에 머물러 있다는 말은 하나님하고 머물러 있어야 되는데 육신에서 오는 소리와 친구가 되어가지고 놀고 있다, 그것이 어린아이라는 말입니다.
배가 고프면 하나님을 원망하게 만들고, 배가 부르면 교만하도록 만들어서 하나님을 필요 없도록 만들고, 뭐가 안 될 때면 장래가 불안해서 그냥 절망하도록 만들고, 이 육신이라는 것이 그런 일을 자행하는데 이것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육신이 하는 것이다! 나하고 육신하고 구분해야 됩니다. 비록 어떤 어려움으로 인해서 겉으로는 불평할지라도 성령으로 거듭난 내 영은 하나님을 절대로 부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가기를 원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나’라는 존재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요, 하나님 가까이 하기를 영원히 소원하는 자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내 마음에 감동이 일어나는 자요, 기도하면 성령의 능력이 솟아나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오늘이라도 아버지가 부르시면 천국 가서 살 사람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거듭난 사람이요, 우리는 부정한 자가 아니라 더러운 자가 아니라 하늘에 속한 자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부정한 것과 같이 하지 말아라.’ 늘 말씀하여 주십니다. 왜? 우리는 하늘에 속한 사람이니까. 옛날에는 어두움의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빛의 사람이다, 빛이다,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을 입은 존재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새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자입니다. 베드로가 겁이 나서 주님을 모른다고 큰 소리로 맹세하면서 부인하였지만 그의 마음은 절대로 주님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물었습니다. ‘베드로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예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그것은 누구도 꺾지 못합니다. 우리는 영원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자식들입니다.
우리는 거룩한 자로 거듭났기 때문에 거룩한 것에 가까이 갔을 때 진심으로 속에서부터 평안이 있고 기쁨이 있는 하나님의 자식들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거룩한 말씀을 먹으면 소화가 되고 힘이 납니다. 우리는 구별된 사람, 복 받은 사람입니다. 마귀가 부러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대상입니다. 우리는 빛의 존재입니다.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가끔 육신에 속아서 조금 그 육신하고 친구가 되어서 놀아서 그렇지 절대로 우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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