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온 룻은 모압 여인으로 남편도, 자식도, 의지할 곳도 없는 장래가 보장된 것이 하나도 없는 여인이었습니다. 이삭을 주우며 이러한 인생을 살아가는 여인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어떻게 임하셨는가 하는 것을 보여 주고 계십니다.
룻의 믿음을 먼저 언급하고 계십니다. 남편과 두 아들을 잃은 나오미가 본국으로 돌아올 때 며느리들에게 모압에 남아 있으라고 합니다. 그럴 때 첫째 며느리는 돌아갑니다. 15절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 돌아가나니” 자기가 섬기던 신을 섬기는 곳으로 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룻은 하나님을 믿는 여인이었습니다. 룻기 1장 16절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믿음입니다. 룻은 하나님을 믿는 자요, 하나님을 섬기는 자요, 하나님을 떠나지 않겠다, 자기가 전에 섬겼던 이방 신에게 돌아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룻기 2장 12절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룻은 하나님의 보호를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자기에게 아무 것도 없지만 하나님이 보호하시는 보호 아래 그가 있다는 믿음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아주 어렵습니다. 2장 10절 “룻이 엎드려 얼굴를 땅에 대고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는 이방 여인이거늘”, 정말 신분이 천한 사람입니다. 13절 “룻이 이르되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나는 당신의 하녀 중의 하나와도 같지 못하오나”, 이방 여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룻은 현실적으로 정말 불쌍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러한 룻이 그런 신분에서 어떻게 살았는가? 하나님을 섬겼다, 생명을 누리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육신에 속하여서 자기를 비하시키고, 열등감에 빠지고, 가난에 빠지고, 불만과 고통으로 살지 않고, 룻은 하나님 아버지가 주시는 생명을 품고 생명을 누리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룻의 알곡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전능자요, 우리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십니다. 그것이 생명을 누리는 자에게 나타납니다. 생명을 누리면 전능자의 기운이 임하신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길이 없고 환경이 어려워도 쭉정이를 품지 말고 생명을 품으라! 그러면 마태복음 13장의 씨뿌리는 비유의 말씀 처럼 전능자의 은혜로 30배, 60배, 100배가 나오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의 좋은 예가 룻의 생애입니다. 룻은 정말 보잘 것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생명이 나타난다는 것은 좋은 인품을 말합니다. 육신을 누리지 않고 하나님의 생명을 누리는 자는 가까이 갈수록 아름답습니다. 겉으로는 초라하지만 안에는 너무 귀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룻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룻기 2장 11절 “보아스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알려졌느니라”, 네 성품이 참 좋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룻은 우리와 심리가 똑 같은 사람입니다. 얼마든지 열등감에 빠질 수 있고, 불평할 수 있고, 절망할 수 있고, 정말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생명을 누리고 살았는지!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슬픔을 누리지 말고, 육신에서 일어나는 반응을 누리지 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을 누려라! 룻은 그 생명을 누렸다는 것입니다. 그 누림이 더 풍성해졌다는 것이 3장 10절 “네가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 더 네가 생명을 잘 누리는 구나!
성경은 전부 다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십니다. 여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숨어 있는 것입니다. 다윗, 아브라함, 룻이 훌륭한 것이 아닙니다. 그 안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누렸다는 것입니다. 그 누림이 더 풍성해졌다!
11절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 룻은 아주 인품이 좋은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편안하게 살아갈 수 없는 가난한 여인이었지만 모든 사람이 그의 인품을 다 알고 있다, 생명을 누리고 사는 사람이라!
인생에 어두움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요한복음 14장 6절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어둠이 있지만 생명을 누려라!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이라! 절망을 누리지 말고, 환경에서 반응하는 육신의 것을 누리지 말라! 룻은 우리와 똑 같은 사람인데 생명을 누리고 산 사람입니다. 나중이 더 아름다운 사람, 네가 하나님의 생명을 누림이 풍성하구나!
룻기 4장 15절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네 며느리”, 룻이 일곱 아들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귀한 사람입니다. 사람의 귀함은 인품에 있습니다. 인품은 하나님의 생명을 누리는 데에서 나타납니다. 인간의 육신에서 나오는 것은 환경이 좋으면 부드럽지만 어려운 일 당하면 어둠이 나옵니다. 영생을 누리고 생명을 누리고 살아라!
이렇게 살아가는 자에게 전능자의 인도하심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누리는 것이 주님을 따라가는 것이고, 주님을 따라가는 자는 전능자가 그의 앞길을 열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전능자가 인도하시는 것에 특징이 있습니다. 룻기 2장 3절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우연히’ 전능자는 얼마든지 그렇게 표시 안 나게 일을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볼 때는 ‘우연히’이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보아스 밭으로 가게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생명을 누리고 사는 자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계시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4절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이 시간과 때를 맞추어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생명을 그 어려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생명을 누리고 살았던 룻에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선명하게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룻기 4장 13절 “이에 보아스가 룻을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엄청난 일입니다. 하녀보다 신분이 낮은 룻을 아내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리고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아들이 누구인가? 그 아들 ‘오벳’은 장차 다윗 왕의 할아버지가 됩니다. 엄청난 일입니다. 친족들에게서 존경받는 보아스와 결혼한 것도 엄청난 복이지만 그 보다 더 큰 복은 자기가 낳은 아들이 장차 다윗 왕의 할아버지가 된 것입니다. 룻은 몰랐지만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엄청난 복이 거기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큰 복이 있습니다. 자기 이름이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가는 영광을 받았습니다. 룻기 4장 22절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예수님의 족보, 마태복음 1장 1절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5-6절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예수님의 족보에 룻이 들어갑니다. 영광입니다.
우리는 장차 주님 나라 가서 받을 영광을 사모하며 살아야 합니다. 내 눈에 보이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내 눈에 보이는 보아스와 비교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선물이 천국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생명을 누리고 삽시다. 그것이 영광의 길입니다. 전능자의 영광이 나타나는 길입니다. 오늘도 생명을 누리고 삽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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