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절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그 때에… 첩을 맞이하였더니, 그 첩이 행음하고 남편을 떠나…” 타락한 때입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살고 하나님의 법, 간섭이 없는 시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사기 전체가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사는 타락한 모습입니다.
우리가 지금 그러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다수결로 정해서 삽니다. 타락한 것입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우리는 우리 중심이 주인이신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진리이신, 생명이신 하나님이 없습니다. 어두움에 살고 있습니다. 자기가 어디에서 시작했으며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삽니다. 그러한 자기를 믿고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자기 중심으로 삽니다. 모순입니다.
신앙생활은 아버지의 간섭 아래에서 자유를 얻는 것입니다. 육신은 죄에서 온 것이기 때문에 철저하게 나를 멸망케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육신에서 나오는 것을 굳게 믿고 그것을 좋아하면서 삽니다. 이것이 죄에 중독된 것입니다. 종입니다. 종은 결정권이 없고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합니다. 사탄은 네가 좋아하는 대로 살라고 합니다. 세상을 언제 떠날지도 모르는 자기 자신을 믿고 산다, 참 불쌍한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주인이 없으므로, 하나님이 없으므로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영적으로 어떻게 표현하셨는가? 마태복음 4장 16절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이 세상을 흑암이라! 빛이 없으면 다 죽습니다. 식물은 죽으면 끝납니다. 그런데 사람은 영적인 존재이니까 죽지 않고 죽음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일 무서운 것입니다. 하나님이 영의 세계에 유일한 빛이십니다. 생명의 빛이십니다.
이 세상 사람들의 관심은 육체, 몸을 가지고 자기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이 자기 삶의 영역인 줄 알고 삽니다. 흑암에 있다, 사망 밖에 없습니다. 시들어져 간다는 그것이 이미 죽음으로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죽지 않으니까 계속 죽음 속에 사는 것입니다. 그 죽음의 맛이 고통, 분노, 미움, 염려입니다. ‘미워서 죽겠다, 너무 힘들어서 죽겠다’ 전부 죽음으로 가는 것입니다.
유다서 1장 13절 “자기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으로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이라”. 영원히 죽음에서 사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죽음의 아주 작은 부분을 맛보고 살고 있습니다. 고통, 괴로움, 분노, 슬픔, 고독, 전부 죽음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심화되면 ‘지옥과 같다’고 표현합니다. 그냥 지나가는 소리가 아닙니다.
우리가 그런 죽음의 맛을 보면 ‘빨리 하나님께로 가야지’ 하는 싸인으로 보아야 합니다. 생명의 빛이 되신 하나님께로 가면 어두움에서 벗어나고, 빛에 가까이 가면 빛이 나를 왕성하게 살려 줍니다. 요한복음 1장 “생명의 빛”이라, 영을 살리는 빛이라! 영적인 존재인 나를 살리시는 분은 하나님 뿐입니다. 우리는 그 분의 자식이기에 언제든지, 얼마든지 그 분에게 갈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눈으로 보이는 것과 영적으로 보이는 것과는 확연하게 다릅니다. 창세기 13장부터 보면 아브라함과 롯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살 때에 그 지역이 너무 좁아서 서로 헤어집니다. 아브라함이 9절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10절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13절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 롯이 영적인 것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아주 화려하고 좋았지만 영적으로는 흑암이었다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영원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따라 삽니다. 우리는 항상 빛으로 가까이 가는 것을 선택해야 합니다. 어두움으로 가면 죽음 밖에 없습니다. 롯이 소돔 고모라로 갔는데 나중에 그 도성은 하나님의 불로 멸망되어서 재산을 다 빼앗겨 버렸습니다. 내가 어두움으로 가는지 빛으로 가는지를 항상 보아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3장의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하여 하신 말씀, 15절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7절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이것은 보이는 것입니다.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영적인 것은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빛이 되시는 하나님을 늘 가까이 하며 사는 것이 정말 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영적으로 강건함을 얻습니다. 하나님이 생명의 빛이십니다. 영적인 존재를 살리는 유일한 빛입니다. 영적인 존재가 아닌 식물은 하나님의 빛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세상적, 물질적으로는 부족함이 없었는데 주님은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영적인 네 존재는 아주 가난하다고 말씀하십니다.
20절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주님께서 수시로 내 마음을 두드려 주십니다. ‘나를 찾으라, 어둠에 있지 말고 나에게 나오라’고.
히브리서 10장 25절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빛을 가까이 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주님께서 늘 내 마음을 두드려 주시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우리 하나님이 내 영혼을 살리시는 유일한 생명의 빛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어둠으로 내려가지 않도록!
사사기의 특징은 “왕이 없으므로” 자기 좋아하는 대로 살았다, 어둠 속에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심판, 멸망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도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하도록 은근히 위협을 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영적인 것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하나님을 가까이 해서 강건하게 담대하게 살아야 합니다. 육신보다 내 영혼이 늘 건강한 상태로 살도록 하나님을 늘 가까이 하면서 삽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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