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에는 계속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곳 이방인들과 전쟁을 해서 그들을 쫓아내고 이스라엘 지파들이 정착을 하게 되는 내용들이 있습니다. 어떤 지파는 싸워서 이기고, 어떤 지파는 싸웠지만 이기지 못해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고 같이 지내고, 어떤 지파는 오히려 산지로 쫓김을 받아 내려오지 못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약에는 이스라엘의 전쟁에 대한 내용이 주로 기록되어 있는데 그러면 우리가 왜 이스라엘의 역사를 알아야 되는가? 그런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을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 우리들에게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신앙생활 하는데 싸움이 항상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아들의 본분은 아버지를 섬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육신은 이 세상 끝날 때까지 아버지를 섬기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방해를 합니다. 성경 지식만 가지고는 하나님을 섬길 수 없습니다.
자칫하면 자기 스스로 속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 죽으시는 데까지 따라 가겠습니다’ 각오를 하였지만 약하여서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그럴지라도 그 베드로의 본심에는 주님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왜? 하나님의 자식이니까. 우리가 약해서 넘어지기도 하고 어떤 때는 원망도 하고 하나님께 불평도 하지만 내 안에서는 아버지를 절대로 부인하지 않습니다. 평소에 말 안 듣다가도 어려운 일 당하면 아버지를 찾습니다. 우리가 아버지의 자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분을 잊지 않도록! 우리는 그 분의 생명을 받은 자입니다. 좋은 자식이라는 칭찬보다 좋은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부귀와 명성을 얻어 이 세상에서는 그 사람을 인정해 줄지라도 천국에 가면 아무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속으면 안 됩니다.
운동 선수의 가치는 그 실력이 향상되는데 있듯이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아버지를 더 잘 섬기는 것이 영광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 안의 죄성이 기회만 있으면 신앙생활 하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적당하게 하라고 합니다. 적당하게 하라는 말이 성경에 있습니까? 없습니다. 육신의 소리입니다. 최선을 다해 아버지를 섬겨야 합니다.
창세기 45장에 보면 요셉이 형들에게 자기의 신분을 밝힐 때에 그 형들이 요셉에게 엎드려 절합니다. 그 형들이 그럴 줄 알았더라면 요셉에게 더 잘 해 주었을 것입니다. 그 요셉을 팔 때 형들이 ‘너의 꿈이 어떻게 되나 보자’비웃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식 용이 아닙니다. 말씀대로 될 것이니까 절대로 양보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냥 스치지 마십시오. ‘이 설교를 내가 얼마나 많이 들었는데…, 내가 천국에서 아버지를 만나고 아버지 앞에 설 줄을 말씀대로 알았더라면, 정말 이럴 줄 알았더라면 아버지 더 잘 섬길 걸…’ 하는 날이 반드시 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그것이 영원한 나의 신분입니다. 그런데 내 안에 있는 육신은 우리 믿는 자에게 하나님을 적당하게 섬기라고 유혹합니다. 나중에 천국에 가서 후회할 것입니다. ‘말씀대로…’ 그것이 더 믿어져야 합니다.하나님은 찬송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우리 신앙생활은 마치 마라톤을 경주하는 것과 같습니다. 끝까지 갈 수 있는 힘은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받아야 갈 수 있습니다. 연 초에 한 번 결심했다고 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 하나님을 가까이 해서 하나님의 도움 받고, 성령의 감동을 받아야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달려갈 수 있지 결단했다고 가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디모데후서 4장 6절 바울이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장거리 마라톤 경주입니다.
‘세월이 빠르구나’ 그 다음 ‘그러므로…’ 이렇게 연결이 안 된다면 정말 깨닫지를 못한 사람입니다. 이 성경은 끝이 없으신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책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 하나님은 만났던 경험이 있는 사람, 하나님의 영적인 것을 경험한 사람, 하나님께 더 가고 싶어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더 가게 되어 있습니다. 끝이 없으신 우리 아버지!
내가 영적으로 약하면 육신의 짓눌림을 받습니다. 성령으로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날 때 기도가 안 됩니다. 그 때 엎드려서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여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은혜로 할 수 있습니다.
민수기를 보면 출애굽 후에 바로 한 것이 이십 세 이상 전쟁에 나갈 사람의 숫자를 파악하는 것이었습니다. 구원 받았으면 바로 영적인 전쟁터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육신이 신앙생활 못하도록 그냥 유혹합니다. 구원 받았으면 바로 하나님의 은혜로 영적으로 강건해 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꾸 육신에게 당합니다. 우리는 정말 하나님을 가까이 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를 진정으로 사모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17절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 안에 이 두 가지의 싸움이 항상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계속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이 장애물을 뚫고 나갈 수 있습니다. 내가 약하면 당합니다.
디모데후서 4장 10절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사도 바울과 함께 사역을 한 ‘데마’라고 하는 아주 충실한 일꾼이(빌레몬서 1장 24절) 나중에 세상에 빠져버렸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하나님께 구하는 기도를 하고 계실 때 ‘주님께 충성하겠다’고 의지적으로 결단을 한 제자들은 자고 있었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마태복음26장 41절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마음의 원은 성령님이 주신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13절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소원도 성령님이 주시지만 그것을 행할 수 있는 능력도 성령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사모해야 합니다. 주님을 가까이 해야 그 능력을 받습니다. 소원도, 그것을 행할 수 있는 능력도 성령님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소원을 받았습니다. 그것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우리가 받아야 합니다. “깨어서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얼마 남지 않은 이 인생의 마지막 길에 성령의 능력을 받아 믿음 지켜 갑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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